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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금에 대한 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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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금에 대한 상식

인천에서 1t 트럭으로 청과물 행상을 하던 정봉석씨(가명-48)는 얼마 전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나 기분좋게 소주 한잔을 걸쳤다. 술자리가 끝날 무렵 정씨는 잠깐 고민에 빠졌다. '차를 두고 갈 것인가. 가져갈 것인가.' 얼굴은 이미 불콰해졌고 호흡은 조금 가빴지만 머릿속에서는 차를 두고 갔을 때 물어야 할 주차비와 택시비에 대한 계산이 빠르게 오갔다. '가뜩이나 장사도 안 되는데....'

30분 뒤 정씨는 경찰의 음주운전 단속에 걸려 면허취소 처분과 인천지검으로부터 벌금 1백42만원을 구형받았다. 하지만 정씨에게는 벌금으로 낼 돈이 없었다. 결국 그의 선택은 몸으로 때우는 것. 그에게는 하루 일당 4만원씩으로 계산한 36일간의 노역형이 떨어졌다. 어차피 일을 계속해도 하루에 4만원 벌기가 어려운데 자신의 일당을 '4만원씩이나' 쳐주는 것도 고마운 일이라고 정씨는 생각했다.

경기침체가 계속되면서 벌금을 내지 못해 노역으로 이를 대신하는 '환형유치'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노역장 유치로 환형된, 쉽게 말해 '몸으로 때운' 벌금액은 사상 최고인 9백71억여원을 기록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의 2백17억여원보다 4.5배 증가한 액수로 전년도인 2002년 5백26억여원에 비해서는 84%가 늘어난 것이다.

지난달 대구지검에서 밝힌 자료에서도 이런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검찰에 따르면 올들어 10월말까지 벌금형으로 약식기소된 사람은 7만9천4백4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6만3천4백59명, 2002년 5만6천1백26명에 비해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이 가운데 벌금형을 부과받고도 벌금을 내지 못해 노역장에서 몸으로 때운 사람도 10월말 기준으로 4,784명으로 지난해 3,568명, 2002년 1,243명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

특히 벌금미납으로 노역장으로 간 사람 가운데 70%는 1백만~3백만원의 소액 벌금을 미납한 경우였다. 이는 서민들의 가계가 계속된 경기불황으로 그만큼 어려워졌다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심지어 향토예비군법 위반으로 고발되어 벌금 30만원을 선고받은 서모씨(34)는 단돈 '30만원'이 없어 노역을 택했다. 지난 7월 폭력혐의로 벌금 50만원을 선고받은 주부 황모씨(43)도 벌금을 낼 돈이 없어서 일당 3만원씩으로 쳐주는 노역을 했다.

벌금을 구형받고 이를 납부하지 못하면 검찰에서는 일단 당사자를 기소중지자로 분류한다. 이 상태로 일상생활을 해도 적발되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불심검문 등으로 경찰에 검거되면 즉시 벌금을 납부하거나 검찰에 송치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만약 검찰에 송치된 뒤에도 벌금을 내지 않으면 교도소나 구치소 노역장에서 1일 이상 3년 이하의 노역을 살아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벌금을 부과할 때 범죄의 경중에 따라 '벌금 000 원' 하는 식으로 벌금을 부과하는 총액벌금형 제도에 따르고 있다. 벌금을 내지 않고 노역형을 택하면 어떤 사람은 일당 3만원으로 계산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일당이 수백만원으로 매겨지는 불합리한 경우도 있었다. 대개 소득이 적은 사람의 일당이 많은 사람에 비해 적게 책정되는 편이다.

때문에 최근 법무부 등에서는 같은 죄라 해도 피고인의 소득에 따라 벌금액수를 달리하는 '일수벌금제'의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예를 들어 혈중알코올 농도 0.05% 음주운전의 경우 '벌금 1백만원'이 아닌 '벌금 5일'로 정해 놓고, 운전자의 하루평균 소득을 계산해 5일치 벌금을 매긴다는 취지다.

노역자 급증 오히려 할일이 부족

벌금을 납부하지 않은 사람이 노역장에 간다고 해서 모두 노역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개 노역이라는 것은 수감시설 내에서 봉투나 가방, 혹은 교정공무원 옷을 제작하는 작업을 말하는데 최근 급증한 노역자들을 수용할 만큼 작업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없는 일을 만들어서 노역을 시킬 수도 없는 노릇. 때문에 노역이라고 해도 해당 기간만큼 징역형을 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도 볼 수 있다.

법무부 교정국 신용해 사무관은 "교정시설 내에서 웬만하면 적재적소에 배치해 노역을 시키려고 하는데 여의치 않는 경우가 많다"면서 "애초 취지는 강제로 일을 시키는 것이지만 실제로 알코올 중독자나 병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는 일을 못 시킬 뿐 아니라 오히려 의료비 등이 더 들어간다"고 말했다.

'벌금 대신 노역'을 택하는 사람이 증가하는 것과 함께 최근에는 벌금형을 선고받고 이를 조금이라도 깎아보려고 정식 재판을 청구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혹은 벌금형 대신 이보다 더 센 형벌인 징역형에 해당하는 집행유예를 호소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도 최근 경기불황을 반영하고 있는 서글픈 현상이다.

사업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2천만원을 빌렸다가 이를 갚지 못해 사기 혐의로 고소된 김모씨(35)는 11월 25일 서울동부지법에서 열린 재판에서 "사업에 실패한 이후 임시 운전기사로 일하며 한 달 1백만원을 벌고 있는데 이런 형편에서 도저히 수백만원에 달하는 벌금을 낼 수 없다"면서 "차라리 집행유예형을 받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재판부는 김씨의 딱한 처지를 감안해 벌금형 대신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서울중앙지검 징수계 관계자는 "경기불황 탓인지 소액 벌금조차 내지 못해 몸으로 때우려는 사람도 많고 벌금을 깎아달라는 사람도 많다"면서 "벌금을 내지 못해 기소중지된 사람이 최근 부쩍 늘어난 것을 보면 우리도 마음이 아프다"고 전했다.